[2000호] 200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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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한국역사보존협회 임청근 회장

미국 움직이는 실세 된
북파공작원 출신 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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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전 대통령 부부와 포즈를 취한 임청근 회장.
‘미 대통령 자문위원, 허가 코드 92804SP3
E26, 자문 번호 18674319’.

북파공작원(HID) 출신 재미동포로, 미 공화당 상원의원 후원조직의 최고 실세에 오른 임청근(75) 한국역사보존협회 회장에게 부여된 타이틀이다. 2001년 조지 W 부시(Bush) 대통령으로부터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면서 받은 것이다.

임 회장은 최근 전국 공화당 상원위원회(National Republican Senatorial Committee)로부터 공화당의 다수당 탈환을 위한 ‘다수당 만들기(Majority Maker)’의 핵심 위원 중 한 사람으로 위촉돼 공화당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임 회장은 공화당 지지자들 가운데 매년 25만달러 이상 기부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공화당 고액기부자(major donor)’에 포함돼 있는 유일한 한인이다. 1980년대 사업이 한창일 때는 수백만달러씩 기부금을 내기도 한 그는 공화당 내에서는 원로그룹에 든다. 1972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공화당에 거액을 기부해 왔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6ㆍ25 때 미군 입대…북한 오가며 활동


임 회장은 1932년 3월 서울 서대문에서 임복일씨와 이부전 여사 사이에서 5대 독자로 태어났다. 부친은 부잣집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이화여전을 나온 엘리트였다. 초등학교 때 가족은 경기도 부평으로 이사했다. 임 회장은 부평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뒤 배재중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졸업을 1년 남긴 17세 때 6·25전쟁을 맞았다. 당시 어머니는 부평에 주둔하던 미군 부대에 5대 독자인 아들을 맡겼다. 미군을 따라다니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미군을 따라다니면서 북파공작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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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25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버지니아 맥클린의 개인 사저를 방문, 공화당 핵심 지지자 40여명과 함께 만찬을 가졌다. 사진은 공화당 의장을 지낸 프레드 말렉 전 의장의 개인 저택.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몰랐습니다. 깜깜한 밤에 무조건 배를 타라고 하더라고요. 어느 해안가에 상륙하더니 산에 올라가라고 했고, 산 정상에서 먼산을 바라보며 소총으로 난사하라고 시켰습니다. 한참 총을 쏘니까 귀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천 상륙작전을 위장하기 위해 원산에 북파공작원들을 침투시킨 것입니다. 마치 원산으로 상륙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작전이었던 것이죠.”

군복과 계급도 없었지만 5대 독자로서 살아있다는 것만도 감사했다. 그는 미 해병 1사단을 따라 전국을 누볐다. 

이후 6·25가 끝난 뒤에도 임 회장은 서해 지역에 거점을 두고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북파공작원들의 이름이 담긴 수첩을 만지작거리면서 “국가를 위해 봉사한 데 대한 아무런 대가도 없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주요 임무는 남한에서 잡은 간첩을 교화시켜 북한에 돌려 보낸 뒤, 북한에 가서 그 공작원들의 활동사항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하면서 후배들에게 권투를 지도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훗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김득봉 선수였다. 국내 권투계의 원로인 강부영 선수도 이때 인연을 맺었다.

임 회장은 3년 열애 끝에 1959년 부인 김희숙씨와 결혼한다. 그러나 부인 김씨는 남편의 직업이 뭔지 정확하게 몰랐다고 한다. 북파공작원 1세대인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보 분야에서 일했다. 그는 1966년 한국에서 최고로 좋은 지프를 몰고 다녔다. 탤런트 이덕화의 부친인 이예춘 선생으로부터 구입한 중고차였지만 국내에는 한 대밖에 없는 차였다.

그는 또 외국기관 노동조합 부평 지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주 업무는 정보 분야였고 부업으로 외기 노조 지부장을 한 것이다. 임 회장은 “종업원들이 학대 받는 걸 보다 못해 도와주게 됐다”면서 “주로 미군 군속들의 임금 인상 등을 위해 시위를 주도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파공작원 경기 지부 부회장 등을 지내며 북파공작원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도 유지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은 부인의 난산 후유증이었다. 그는 부인의 병을 고쳐보기 위해 1972년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공화당과 인연을 맺다
태권도 시범 보이다 유세하던 닉슨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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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회장의 청년시절. 그는 미 해병 1사단과 함께 전국을 누볐다.

임 회장은 1972년 리처드 닉슨(Nixon) 대통령의 선거 운동을 도우면서 친분을 쌓았다. 그것도 우연이었다. 그는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펜실베이니아의 벼룩시장을 지나던 중 누군가로부터 태권도 실력을 보여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임 회장이 거구의 미국인을 간단한 호신술로 제압하자 관중들은 박수를 쳤고 이어 이를 지켜보던 닉슨 대통령이 나타나 악수를 청했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유세 현장인 줄도 몰랐다”면서 “거구의 미국인 세 명을 차례로 격퇴했더니 닉슨 대통령이 유세 때마다 불렀다”고 웃었다. 이후 그는 닉슨 대통령의 유세장을 다니며 호신술 이벤트를 해주면서 닉슨 대통령과 가까워졌다.

이후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폐차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폐차에서 나오는 희귀 금속을 모아 내다팔았는데 생각보다 장사가 잘됐다. 그는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공화당에 입당 원서를 냈다. 닉슨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 정치에 대해 잘 몰랐지만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하게 여겼다.

1970년대 중반 당시 미 워싱턴에서는 박동선 게이트가 터져 미 정치권에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한국에 쌀을 독점 판매하던 박동선씨가 미 의원들을 상대로 불법 로비를 벌인 혐의가 드러나면서 평지풍파가 일어난 것이다. 임 회장에게는 박동선 게이트가 성공의 도화선이 됐다. 박동선씨가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쌀 독점 판매권을 임 회장이 넘겨 받은 것이다. 임 회장은 이때 ‘떼돈’을 벌었다. 그는 지금도 당시 체결했던 9000만달러(약 900억원)짜리 LC(수출신용장) 복사본을 간직하고 있다.

이후 임 회장은 때론 100만달러가 넘는 선거 자금을 공화당에 기부할 정도가 됐다. 공화당의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임 회장은 각종 선거 자금 모금 및 지원 등 공화당 활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그는 닉슨 대통령 이후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부시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화당 대통령들과 친분을 맺고 있다.

그는 또 부시 대통령의 오른팔인 칼 로브(Rove) 전 백악관 정치고문과는 서로 ‘친구’로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다. 또 공화당 상원위원회 위원장인 존 엔슨(Ensign·50) 상원의원이나 짐 이노프(Inhofe) 상원의원과는 허물 없이 지낸다. 이런 네트워크 덕분에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 실세(정책위원)만 참석하는 개인 파티에 임 회장을 빠짐없이 초청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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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회장과 활동하던 북파공작원 경기지회 멤버들.

지난 3월 25일에도 임 회장은 부시 대통령이 만찬 강연하는 행사에 초청 받았다. 그는 이 행사에 본지 등 워싱턴 특파원들을 초대해 함께 들어갔다. 부시 대통령은 포토맥강이 내려다보이는 버지니아주 맥클린 지역 최고급 저택의 응접실에서 1시간30분 동안 강연을 했다. 참석자는 40여명에 불과한, 그야말로 공화당 핵심 지지자들과의 대화 시간이었다. 집 주인은 공화당 의장을 지낸 바 있는 프레드 말렉씨. 집 값은 최하 1000만달러(약 100억원)는 호가할 것 같았다. 대문에서 집 현관까지 차 타고 1분은 들어가야 할 정도로 마당이 넓었다.

이날 행사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고, 하루에 적자가 100만달러에 달한다는 대부호도 있었다. 또 엔슨 상원의원 이외에도 케이 베일리 허친슨 상원의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허친슨 의원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경우 매케인 상원의원이 부통령 후보로 고려하고 있는 여성 의원이다.


한ㆍ미포럼 발족
미 의회로 한국 정치인 초청해 동맹 기여


임 회장은 최근 워싱턴에서 엔슨 상원의원과 함께 ‘한·미 캐피털 포럼’을 발족했다. 이 포럼은 한국의 정치인 및 정치 지망생을 미국으로 초청, 미 의회와 공화당 당사 등에서 미국 정치인들의 특강을 듣는 등 미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체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포럼은 또 미국의 정치인 및 정치 지망생들을 한국으로 초청, 한국 정치인들과의 교류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임 회장은 또 6·25 참전 용사를 위한 한·미동맹협의회 행사를 지원하는 등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임 회장은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나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내게 솔직한 의견을 묻곤 한다”면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참 난감한 일이 많았지만 새 정부 들어 한·미동맹이 굳건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워싱턴 =  최우석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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