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부터 시작 친분 대통령만 5명, 36년간 백악관 제집 가듯 드나들어


발행: 06/27/2008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06/26/200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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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한미 정상회담 성사시킨 공화당 실세

<하> 북파 공작원에서 대통령 자문위원까지

전 국 공화당 상원위원회가 다수당 탈환을 위해 위촉한 ‘머조리티 메이커’(Majority Maker)의 핵심 인물. 공화당에 매년 25만 달러 이상을 기부해 고액 기부자로 분류되는 유일한 한인. 정상회담을 포함해 한국 정치인들과 미국 정치인들 사이에 교량 역할을 담당하는 ‘숨은’ 실력자…임청근(영어명 척 임·75) 미국 대통령 정책자문위원의 현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수식어들이다.

"존 매케인이 이길 것으로 자신합니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오바마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인이라 어려움을 겪을 겁니다. 오히려 힐러리보다 쉬운 상대일 수 있어요."

임청근 위원은 거침없는 대선 전망으로 대화를 풀기 시작했다. 그는 매케인 후보측과 교분이 두텁다. 만약 매케인 마저 당선되면 그가 친분을 맺은 대통령은 6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임 위원은 1972년 리처드 닉슨을 시작으로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아버지 부시 조지 부시 현 대통령 등과 가까이 지내며 36년간 백악관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임 위원을 유별나게 아낀 레이건 대통령은 엉덩이를 때리는 장난을 치고 불시에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미국 동맹국 최고지도자를 비롯해 귀빈중 귀빈만 초대받는다는 부시 부자의 크로포드 목장에도 여러 차례 다녀 왔다.

칼 로브 전 백악관 정치고문 공화당 상원위원회 위원장 존 엔신 의원 짐 이노프 상원의원 등 공화당 실세들과도 허물없이 지낸다. 임 위원의 영향력을 증명해 주는 일화가 있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백악관은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다급해진 한국정부의 외교 참모들이 임 위원에게 매달렸고 그는 당시 부시 대통령을 독대한 끝에 결국 회담을 성사시켰다.

2001년 부시 현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이래 국방 및 안보 한국과 일본 등 대외정책 관련 자문업무를 맡고 있다. 대통령과의 독대나 사적 대화가 가능한 자문위원 신분이라 공개된 자리에서만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장관들보다 더 민감한 사안을 접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전하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성사 배경은 이렇다.

"원래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북핵은 미국 문제'라며 개입을 꺼렸어요.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미국은 무력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죠. 그 얘기를 들은 후 주석이 즉시 '북한을 6자회담에 나오게 할 테니 그러지 말아달라'고 태도를 바꿨습니다."

한미 관계에서도 아찔했던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이제 손상된 한미동맹을 차근차근 복원할 때입니다."

기자가 임 위원을 만났던 날은 공교롭게도 6월 25일이었다. 벌써 5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북파 공작원 출신으로 생사를 넘나들었던 그에게 6.25는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다.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Source: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45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