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장소에서 3.1절 기념식

[2008-03-01 14:42]

  • ▲대한독립만세
  • ▲제89주년 3.1절 기념식
  • ▲왼쪽에서 다섯번째 꽃다발을 안고 있는 이가 이해경 공주





▲제89주년 3.1절 기념식

▲이승만 대통령이 1943년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기념식수한 장소앞의 기념문

▲이승만 대통령이 1943년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기념식수한 장소


1943년 4월 8일 이승만 박사가 아메리칸대학교 폴 더글라스 총장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기념식수 한 역사적인 장소에서 제89주년 3.1절 기념식이 진행됐다.

기념식은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 동상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우태창)와 아메리칸대학교국제대학(학장 Louis W, Goodman)이 공동주관하고 한국역사보존협회(회장 임청근, 사무총장 윤기원)가 주최했다. 

워싱턴 D.C에 소재한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아메리칸 대학교에 다니는 한인학생 20여명을 비롯해 약 250여명의 한인들이 참석했다.

3월 1일 정오에 시작한 기념식은 아메리칸대학교한인학생회장인 김병준 군과 오소민 양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이종수회장(6.25참전유공자회)의 개회선언, 안응섭 목사(MD 한인기독교증경회장협의회 회장)의 기도, 김찬국 목사의 3.1운동 소개, 임청근 박사(한국역사보전협회 회장)와 Louis W, Goodman(AU Dean)의 축사, 이해경 공주와 우태창 위원장의 기념사, 박숙향 회장의 격려사, 박윤식 목사의 독립선언서 낭독 등이 이어졌다.

만세삼창은 학생을 대표해 김현준 학생이, 목회자를 대표해서 현종각 목사가, 노인회를 대표해 김윤택씨가 각각 선창했다. 기념식은 김엘리야 목사의 축도로 마쳐졌다.

김찬국 목사의 3.1 운동 소개 전문

3.1 운동은 일제강점 시대에 가장 빛나는 민족 해방운동으로 모든 계층이 참가하였을 뿐 아니라 그 규모 또한 전국적이었습니다. 총 1542회 집회가 열렸으며 참여인원은 202만 3089명, 사망자는 7509명, 부상자는 1만 5961명, 구속자는 5만 2770명이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하여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에 항거함과 동시에, 전 세계에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또한 조선 민족이 일본의 통치를 달게 받는다고 한 일제의 선언이 완전 허위 날조였음을 일시에 폭로한 독립만세 운동으로 근대 민족주의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내외적으로는 일제의 무단정치가 끝나고, 보다 교활한 문화정치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상해의 임시정부탄생, 해외 무장독립운동의 촉진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식민지 및 반식민지의 민족운동 등에 강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 민족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포하여 이 날을 국경일로 정하였습니다.

3.1 독립 만세운동은 역사 앞에 당당함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는 가르침이었으며, 대의 앞에 소아를 버리고 하나 될 때 얼마나 큰일을 이룰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표상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워싱턴 지역의 동포들이 나서서 선열들의 빛나는 정신을 실천해야 할 때이며, 후세에 자랑이 되고 역사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