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부시 대통령과의 만남 (1)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고향, 크로포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란 대형 표지판

1.크로포드행 버스 

크로포드 목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임청근 박사는 몇 차례나 당부를 반복했다. 혹시라도 계획에 차질이 있을 수 있으니 크로포드 행에 대해서는 절대 비밀을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수 십 년 동안 미국 공화당에 몸담아온 임박사는 말하자면 ‘공화당 확신범’이었다. 공화당의 정치 철학과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자신의 청춘을 바친 그는 공화당쪽에서 보자면 당을 떠받치는 귀한 자산이었다. 

이번 방문에서 필자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강한 기둥 가운데 하나인 후원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싶었다. 특히 크로포드에서 열리는 이번 후원회는 공화당내 핵심 후원자들만이 참석하는 모임으로,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깊이 관여하는 인물들도 다수 나타날 예정이었다. 인구 3억 가운데서 선택된 2백 명이니 핵심 중에도 핵심 공화당원인 것이다. 

댈러스의 포시즌즈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꼬박 두 시간을 내려 달렸다. 웨이코를 지나 크로포드 표지판이 보이면서 주변 풍경은 온통 농장과 목장으로 바뀌었다. 2.4 제곱 킬로미터의 지역에 인구 705명, 192 가구가 살고 있는 크로포드에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주민이 살고 있다. 그래서 크로포드 외곽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고향, 크로포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란 대형 표지판이 걸려 있다. 

크로포드 목장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애정은 각별하다. 크로포드에만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말을 한 대로 그는 지금까지 430일의 휴가를 이곳에서 보냈다. 재임 기간중 5분의 1을 크로포드에서 보낸 것이다. 애정이 깃든 곳이니만큼 동맹국 정상 가운데서도 중요하고 가까운 이들만을 이곳으로 초대했다.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사우디의 압둘라 왕,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즈나르 전 스페인 총리 등이 크로포드에서 대접 받은 이들이다. 

2. 후원자들과의 스킨쉽 

크로포드 도착 후 정보국이 운행하는 SUV의 인도를 받아 비포장 도로를 10분 가량 달리니 농장 한 가운데에 세워진 대형천막이 눈 앞에 나타났다. 백악관을 연상시키는 흰 색이 인상적이었다. 가로 백 미터, 세로 오십 미터 가량 되는 대형 천막의 입구에는 엑스레이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백악관을 연상시키는 듯한 대형 천막

천막 안은 축제 분위기였다. 기타와 드럼 연주자들이 경쾌한 연주를 하는 가운데, 컨츄리 가수가 흥을 돋우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 쪽 코너에 설치된 바에서는 바텐더들이 연신 맥주, 양주, 포도주와 각종 칵테일을 참석자들에게 건넸다. 술과 음악, 그리고 같은 정치 철학을 가진 이들만이 가지는 편안함이 천막 안을 축제 분위기로 뜨겁게 달구는 중이었다. 

천막 안에는 열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둥근 식탁이 20여개 놓여져 있었다. 공화당 후원회는 ‘이글’ 멤버에서 시작해 ‘레이진’, ‘팀 100’ 등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이글’ 회원은 연간 만5천 달러에서 2만 달러를 내는 일반 회원과 5만 달러를 내는 골드 멤버로 나뉘어진다. ‘팀 100’는 10만 달러, ‘레이진’ 회원은 20만 달러의 후원금을 낸다. 그러나 돈만 낸다고 후원회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당에 대한 충성도와 기여도 등을 꼼꼼하게 점검해서 그 절차에 통과해야만 회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후원회의 흥을 돋우는 컨츄리 밴드(좌), 워싱턴 정가의 실력자 칼 로브(우)

“저기 칼 로브가 왔어요.”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칼 로브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8월 12일 사임을 발표한 미국 정가의 실력자 칼 로브는 청소년들이 유명 가수를 둘러싸듯 수 십 명의 사람들로 에워 싸여져 있었다. 기념 사진을 찍어 주고 사인을 해주고, 아는 이들과 악수를 하는 칼 로브의 모습에서 그의 영향력이 읽혀졌다. 필자도 그와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조지 W를 텍사스 주지사로 당선시켰고 두 차례 대통령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조지 W로부터 ‘기획자 (architect)’란 별명을 얻은 칼 로브는 오는 10월쯤, 2008 대선에서 공화당 정권 재창출을 위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큰 별 다섯 개를 배경으로 선 조지 W 부시

따끈따끈하게 요리한 양고기와 쇠고기, 소시지 바비큐와 으깬 감자, 콩 줄기 익힘, 야채 무침, 피클이 테이블을 몇 차례 돌아가자 축제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말하자면 후원회는 회원들이 네트워킹을 하고, 토론을 하면서 공화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인 것이다. 

식사가 마무리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줄을 섰다. 대통령과의 사진 촬영을 위한 줄이다. 후원회 모임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인 사진 촬영은 대통령이 핵심 후원자들과 직접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면서 그들과의 ‘스킨쉽’을 나누는 행사이다. 

백 번째 정도로 줄을 서 있던 필자는 몸에 지닌 카메라를 대기장소에 두고 (개인 촬영 금지), 촬영 장소로 들어갔다. 푸른 색 목장을 배경으로 선 조지 W 부시와 로라가 웃음으로 맞았다. “한국에서 온 이진숙입니다.”라고 소개하자 조지 W가 “와줘서 고마워요, 진숙!”이라고 인사를 받았다. 대통령은 흰색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고 로라 여사는 초록색과 파랑색이 섞인 듯한 튜닉 차림이었다. 

조지 W 부시는 텔레비젼으로 보는 것보다 피부가 훨씬 좋았고 날렵한 몸매에 다정다감한 느낌이었다. 레이건이나 카터, 아버지 부시보다도 개인적 친숙도가 높은 듯한 인상이라고나 할까,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지지자들의 마음을 더욱 끌어당길 것이었다. (그와 찍은 사진은 백악관의 '검열'을 거쳐서 한 두달 뒤에 대통령의 서명을 한 뒤 배포된다고 한다.) 

대통령의 휴가는 업무의 연장이었다. 휴가 기간에조차 후원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고, 그들의 질문을 받고, 그들의 생각을 청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다섯개의 붉은 별을 배경으로 선 부시는 후원자들에 대한 환영 인사와 함께, 10여분 정도 행정부의 대내외 정책을 설명했다. “여러분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내가 계속 얘기할 겁니다. 질문 있는 분은 질문하세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질문과 최근 서브프라임 문제로 야기된 경제 위기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전쟁 대통령’답게 그는 ‘악의 무리들’과 싸우는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이어나갔다. ‘악’과의 싸움에서 미국은 반드시 승리해야 하며 또 승리할 것이란 확신이 그의 말에 짙게 배어 있었다. 

한국에 대한 언급도 인상적이었다. 한국 전쟁 당시 상당수 미국인들은 군대를 보내는 데 반대했지만 트루먼 대통령과 아이젠하워는 한국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마침내 자유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을 강조했다. 한국에서 미국이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처럼 이라크에서도 ‘악의 무리’와 싸워 이겨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